개인전 <머물거리는 몸> Murmuring Body(2022)

Solo exhibition, Studio 126, Jeju

메를로 퐁티의 주장에 따르면 몸은 세계와의 접합 지점이며 타자와 다른 사물들에 열린 살이다. 몸으로부터의 의미 작용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단순하지 않으며 언제나 진행 중인 동시에 살아있고 불확정적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몸은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정체성은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인 의미도 내포하지만 다양한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형은 일반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체성은 불안정하거나 기존의 방식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우주언 작가가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서 경험한 언어 간의 충돌은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낯선 공동체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여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이끌었다. 출품작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살을 어루만지면서, 신체를 실험하고 혹은 유영하듯 몸을 탐구한다. 작가에게 몸이란, 내면화된 정체성, 자아와 타자,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매개하는 곳이다. 그녀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젠더다. 유교문화권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온 시간에는 ‘여성’으로 규정되고 의미되어진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의 언어, 외모, 행동 방식, 신체 결정권에 관한 주도권은 늘 타자에게 있었으며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 이외에도 감추어져야만 하는 몸이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단순히 불평등함의 문제로만 귀결시키지 않으며 무엇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내면의 작은 울림과 미세한 움직임들을 추적하고 탐구하며 ‘주체적인 나’로서의 온전함에 몰두한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반추하거나 역사적인 사실들을 독해하는 방식으로 심리적인 질서나 위계적 관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작가가 지어낸 개념처럼 그것은 유연하고 부드럽게 ‘머물거리며’ 어떠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고 연대하며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글 권주희 디렉터)

작가노트 : 나는 속삭인다는 뜻의 영단어 'Murmur'와 머뭇거리는 형상 또는 우물거리며 입안에 삼키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단어 '우물거리다'라는 단어를 합쳐 '머물거리는 몸' 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머물거리는 몸은 클레이 인간처럼 흐물흐물하고 전문 무용수처럼 멋있는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속삭이는 목소리처럼 작은 제스쳐들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몸의 습관과 역사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치유해나가는 주체적인 몸이다. 이 움직임에는 밖의 관음 주체가 있지 않으며, 내면의 중심의 시선에 이끌려 간다. 그리고 나와 같이 불완전한 몸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며 다 다르지만 하나가 된 몸을 형성하기도 한다. 속삭임이 모여 커다란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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